지난 4월 말, 같이 아는 지인의 여동생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식이 끝나고 2부 식사 자리에서 친한 동생을 봤어요. 작은 사업을 하는 동생인데, 평소엔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입니다. 자리가 가깝게 배정돼서 자연스럽게 옆에 앉게 됐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근황 이야기였어요. 요즘 어떠냐, 애들은 잘 크냐, 회사는 어떠냐. 그러다 동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크, 요즘 주식 불장이라 형도 좀 재미 보셨겠네요?”
그때는 시장이 한창 좋던 시기였습니다. 코스피가 연일 오르고, 반도체 이야기가 어디서나 나오던 때였어요.
저는 “난 뭐… 그래도 좀 올랐지. ISA에 미국 ETF 좀 담아둔 거 정도” 하고 왠지 말끝을 흐리며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동생이 자연스럽게 이어갔어요.
“형, 그러면 삼전닉스는 따로 안 갖고 계세요? 요즘 반도체 흐름 좋잖아요.”
“한국 주식은 따로 안 굴리고 있어.”
“아, 그러시구나.”
“넌 좀 벌었냐?”
동생이 가볍게 끄덕이더니 말했습니다. “형, 저는 한 몇 년 전쯤부터 조금씩 담아왔는데 그게 이제 꽤 됐네요.”
…….
그때쯤이 정확히 제가 “주식 좀 알아봐야 하나” 하고 한참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책 한두 권 사보고, 유튜브 몇 개 클릭해보고, “이번 주말엔 진지하게 알아봐야지” 하다가 결국 “다음 주말에”로 미뤘던 그 시기요.
그러니까 제가 “해야지 해야지”만 하던 그 몇 년 동안, 동생은 이미 시작해서 차곡차곡 굴려온 겁니다. 같은 시기를 다르게 보낸 거죠.
“아 그래? 그때 그랬구나. 나는 뭐 좀 이거 저거… 뭐 코인도 왔다 갔다 해봤고” 하고 어물쩍 넘겼습니다.
그저 ‘척’ 했어요.
동생은 더 캐묻지 않고 “오 그러시구나” 하고 다른 화제로 넘어갔습니다. 식사도 잘 마쳤고, 인사도 잘 하고 왔습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묘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쿨한 척했지만, “그때 시작했더라면”이라는 후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동생이 더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동생은 그 시기에 한 발 디뎠고, 저는 디뎠다가 다시 들어올렸을 뿐이에요. 그 한 걸음의 차이가 몇 년 후에 이렇게 다른 자리에 앉게 만든 겁니다.
저는 처음부터 재테크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20대 후반쯤부터 “주식을 좀 알아봐야 하나”, “펀드는 뭐가 좋지”, “청약은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이 종종 들었어요. 책도 사봤고, 경제 기사도 가끔 읽었습니다. 관심은 늘 있었어요.
그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유는 단순했어요. 생활에 쫓겼습니다. 회사 일은 매일 새로 떨어지고, 야근도 잦고. 퇴근해서 저녁 먹고 좀 쉬면 잘 시간이에요. 주말엔 가족 일정, 경조사, 집안일. 그러다 보면 “오늘은 좀 쉬자, 재테크 공부는 다음 주말에”가 매주 반복됩니다. 그 “다음 주말”이 결국 안 옵니다.
변명이라는 거 압니다. 진짜 시작할 마음이 있었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냈겠죠.
진짜 아픈 건 “몰랐다”가 아니었습니다. “고민할 시간은 있었는데 시작할 시간은 안 만들었다” 는 거였어요.
동생이 그 사이 쌓아온 것
집에 와서 동생이 흘린 말들을 다시 곱씹어봤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몇 년 동안 꾸준히 봐온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동생은 “반도체 사이클”, “외국인 매수세”, “환율 변동” 같은 말을 일상 용어처럼 썼습니다. 자기가 산 종목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종목이 속한 시장 전체를 보는 시각이 있었어요. 한두 달 공부해서 생기는 시각이 아닙니다.
“새로 나온 ETF 있는데”, “운용사 바꾸는 분 많더라” 같은 이야기도 자연스러웠습니다. 한 번 정한 종목을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흐름을 보면서 조정하는 게 일상에 있더라고요. 저는 ISA에 한 번 담은 ETF는 그대로 두는 쪽이라, 그런 정보를 챙긴 적이 없습니다.
“운용보수”도 그랬어요. 저도 ISA에 ETF를 담고 있지만,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데 왜 운용사마다 차이가 나는지 같은 건 잘 몰랐습니다. 동생은 그걸 일상 용어로 썼어요. 작은 차이가 10년 단위로 보면 커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시각이었습니다.
사업하는 동생, 직장 다니는 형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저는 “직장 다니니까 안정적이고, 동생은 사업하니까 더 위험하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알게 된 건 그 인식이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습니다.
사업하는 동생은 매일 자기 돈을 굴려야 합니다. 매출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그 사이에 “이 돈을 어떻게 굴릴까”가 일상이에요. 시장 흐름, 새 상품, 금리 변화가 본업의 일부입니다.
저 같은 직장인은 매달 같은 날 월급이 들어오고, 카드값이 빠지고, 남는 게 있으면 ISA에 좀 넣고. 그게 끝이에요.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가 본업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 챙겨야지”가 “안 챙기게” 되기 쉬워요.
동생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동생은 본업이 시장과 매일 닿아 있는 구조에 있고 저는 아니었던 겁니다. 그 구조 차이가 몇 년 후 가계의 차이로 누적됩니다.
그리고 구조는 자각하지 않으면 안 바뀝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
집에 오는 길에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이대로 가면 5년 후, 10년 후에도 또 같은 자리에서 쿨한 척하고 있을 거라는 것.
다음 날부터 작은 걸 하나 시작했어요. 경제 신문 유튜브 채널 구독.
거창한 게 아닙니다. 출퇴근길에 10분 정도 짧은 시장 요약을 듣는 겁니다. 어제 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오늘 이슈가 뭔지. 가볍게 듣고 흘려도 되는 정도로 시작했어요.
처음엔 “이거 들어서 뭐가 달라질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 “환율”, “금리”, “반도체 사이클” 같은 단어가 더 이상 외계어가 아니었어요. 동생이 말했던 “운용보수”, “추적오차” 같은 것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단어가 됐습니다.
큰 변화는 아닙니다. 다만 “매일 0분”에서 “매일 10분”으로 바뀐 것 자체가 차이였어요.
가장 아까웠던 건
이 글을 쓰면서 정리된 게 하나 있습니다.
그날 제가 잃은 건 몇 년의 시간만이 아니었어요. 쿨한 척하느라 더 물어볼 기회를 놓친 것. 그 자리에서 “나는 사실 잘 몰라. 너는 어떻게 시작했어?” 라고 물었으면, 그날 저녁에 그래도 쏠쏠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꼰대 마인드 였는 지 후배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어요.
결혼식장에서 부끄러웠던 그 한 순간이, 결국 제가 늦게라도 시작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부끄럽지 않았으면 저는 또 “다음 주말에”를 반복했을 거예요.
다음에 동생을 만나면 그때는 물어보려고요. 쿨한 척은 그날 한 번으로 충분했습니다.
⚠ 본문에 언급된 ETF·투자 상품은 일상 대화에서 오간 이야기이며 특정 종목·상품 추천이 아닙니다. 본인에게 맞는 운용은 거래 금융기관 상담이나 금융감독원 파인(Fine)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에서 참고한 자료
제 ISA 운용 경험 (1~2년차)
지인 여동생 결혼식에서의 대화 (소규모 자영업자 시각)
제가 구독 중인 경제 신문 유튜브 채널 (출퇴근길 매일 10분 남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