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장 준혁 / IRP·연금 분석
연금저축 계좌를 열고 나서 가장 막막했던 순간은 “이 안에서 뭘 사야 하지?”였습니다.
계좌를 열기까지는 세액공제 16.5%라는 숫자에 확신이 있었는데, 막상 계좌 안에 들어가니 ETF, 펀드, 예금 등 선택지가 수십 개였습니다. 유튜브에서는 “S&P500 사라”, “배당 ETF가 낫다”, “TDF가 편하다”, “채권 비율을 높여라” — 의견이 전부 다르더군요.
한 달 정도 고민한 끝에 S&P500 ETF를 선택했고, 지금까지 약 10개월간 매달 적립하고 있습니다. 왜 이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실제로 운용해보면서 느낀 점을 정리합니다.
처음에 고려했던 선택지 3가지
연금저축 안에서 살 수 있는 상품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봤습니다.
1) 원리금 보장형 예금
원금이 보장되고, 연 2.5~3.5% 정도의 이자를 받습니다. 가장 안전하지만, 물가 상승률(연 3~4%)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돈의 가치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2) TDF (Target Date Fund)
“2050 TDF”, “2055 TDF” 같은 이름으로, 은퇴 예상 시점에 맞춰 자동으로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높여가는 펀드입니다. 투자를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편리하지만, 운용 보수가 연 0.3~0.8% 정도로 ETF보다 높습니다.
3) 인덱스 ETF (S&P500, 나스닥100 등)
미국이나 전세계 주식시장 전체에 투자하는 ETF. 운용 보수가 연 0.05~0.15%로 가장 낮고, 장기 수익률은 역사적으로 연 7~10% 수준입니다. 다만 원금 보장이 안 되고, 단기적으로 -20~30% 하락할 수 있습니다.
S&P500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
세 가지를 비교하면서 저한테 가장 중요했던 기준은 “이 돈을 30년 후에 쓸 건데, 그때까지 가장 많이 불어나는 건 뭐지?”였습니다.
연금저축은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받는 돈입니다. 지금 40대인 저는 최소 15~20년을 투자하는 겁니다. 이 기간이면 단기 등락은 의미가 없고, 장기 평균 수익률이 전부입니다.
20년간 매달 20만원을 적립했을 때 시뮬레이션:
| 선택지 | 연 수익률 (가정) | 20년 후 자산 | 30년 후 자산 |
|---|---|---|---|
| 예금 (3%) | 3% | 약 6,560만원 | 약 1억 1,600만원 |
| TDF (5%) | 5% | 약 8,220만원 | 약 1억 6,600만원 |
| S&P500 ETF (7%) | 7% | 약 10,400만원 | 약 2억 4,300만원 |
같은 월 20만원을 넣는데, 30년 후 예금과 S&P500의 차이가 약 1억 2,700만원입니다. 수수료 차이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물론 S&P500이 매년 7%를 주는 건 아닙니다. 2022년에는 -19%였고, 2008년에는 -38%까지 빠졌습니다. 하지만 어떤 10년 구간을 잡아도 S&P500이 마이너스였던 적은 역사적으로 없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변동성을 흡수해줍니다.
저는 이 계산을 보고 “예금에 넣어두는 건 안전한 게 아니라, 물가에 지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ETF를 사고 있나
국내 증권사 연금저축 계좌에서 매수할 수 있는 S&P500 ETF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저는 TIGER 미국S&P500을 선택했습니다.
선택 기준은 단순했습니다:
- 운용 보수가 낮은가 (연 0.07% 수준)
- 거래량이 많은가 (사고 팔 때 불편하지 않은가)
- 운용사가 믿을 만한가
다른 인기 상품인 KODEX 미국S&P500이나 ACE 미국S&P500도 비슷한 조건입니다. 솔직히 이 세 개 중 뭘 골라도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뭘 사느냐”보다 “사기 시작하느냐”입니다.
10개월간 적립한 실제 결과
지금까지 매달 20만원씩 약 10개월간 적립한 현황입니다.
| 항목 | 금액 |
|---|---|
| 총 납입액 | 약 200만원 |
| 현재 평가액 | 약 212만원 |
| 수익률 | 약 +6% |
10개월 만에 12만원 수익이 났습니다. 솔직히 이 숫자 자체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고, 진짜 효과는 복리가 쌓이는 10년, 20년 후에 나타납니다.
중간에 미국 주식이 한 달간 -8% 정도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좀 불안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돈은 30년 후에 쓸 돈”이라고 스스로 되새기면서 계속 적립했습니다. 오히려 가격이 떨어졌을 때 같은 20만원으로 더 많은 수량을 살 수 있으니까, 장기적으로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TDF 사면 안 돼?” 하는 분들에게
TDF도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특히 투자에 전혀 관심이 없고, ETF가 뭔지도 모르겠고, 앱을 켜서 매수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TDF가 더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ETF 매수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분이라면, 직접 S&P500 ETF를 사는 게 수수료 면에서 유리합니다.
| 항목 | S&P500 ETF | TDF 2055 |
|---|---|---|
| 연 운용보수 | 약 0.07% | 약 0.5~0.8% |
| 1,000만원 기준 20년 수수료 | 약 14만원 | 약 100~160만원 |
| 투자 대상 | S&P500 지수 100% | 주식+채권 혼합 (비율 자동 조절) |
| 직접 관리 필요 | 매달 매수 버튼 1번 | 없음 (자동) |
매달 앱에서 매수 버튼 한 번 누르는 걸로 20년간 수수료를 100만원 이상 아낄 수 있다면, 저는 그 1분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금저축과 IRP, 같은 ETF를 사도 되나?
저는 연금저축에서 S&P500 ETF를, IRP에서도 같은 ETF를 사고 있습니다. “같은 걸 두 계좌에서 사면 분산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S&P500 자체가 이미 미국 대형주 500개에 분산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 등 500개 기업에 동시에 투자하는 것이니까, “하나의 ETF를 샀다”가 아니라 “500개 기업에 투자했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다만 IRP에서는 위험자산 비율이 70%로 제한되어 있어서, 30%는 연금 예금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연금저축에는 이런 제한이 없으므로 100% S&P500 ETF입니다.
나스닥100이나 배당 ETF는 왜 안 샀나
나스닥100: S&P500보다 수익률이 높을 수 있지만, 기술주 비중이 압도적이라 변동성이 더 큽니다. 30년 장기투자에서 변동성이 크면 심리적으로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S&P500이 “적당히 분산되면서도 충분히 성장하는”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당 ETF: 배당을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연금저축 안에서는 배당이 재투자되므로 체감이 없습니다. 그리고 장기 총수익률(주가 상승 + 배당)로 보면 S&P500이 대부분의 배당 ETF보다 높았습니다.
물론 이건 “정답”이 아니라 “제 선택”입니다. 연금저축은 20~30년 유지하는 계좌이니, 본인이 납득하고 버틸 수 있는 상품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정리: 연금저축 투자의 핵심은 “뭘 사느냐”보다 “시작하느냐”
- 연금저축에 돈만 넣고 방치하지 마세요. 예금에 그냥 두면 물가에 집니다.
- 장기 투자라면 S&P500 ETF가 수수료와 수익률 면에서 합리적입니다.
- 매달 20만원씩이라도 꾸준히 적립하는 게 핵심입니다. 타이밍을 잡으려 하지 마세요.
- 중간에 떨어져도 팔지 마세요. 30년 후에 쓸 돈입니다.
가장 좋은 투자 타이밍은 “어제”이고, 두 번째로 좋은 타이밍은 “오늘”입니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복리가 일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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